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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임의 마주보기] 휜 관점과 작은 창의성

사람들은 창의성 하면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연주해내는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 소리나, 루브르 박물관의 벽에 걸려 있는 훌륭한 예술 작품 혹은 기발한 명장면을 포착해서 퓰리처 상을 수상한 특종사진, 또는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맛볼 만큼 소문난 인생의 맛집 등을 연상하곤 한다.     이렇게 우리는 걸작, 명작, 특작, 더 나아가 대작이라고 세간의 평이 나면, 시세에 따라서 남들이 하는대로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는 굳이 일말의 의구심도 갖을 필요 없이 창조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유명하고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아예 취급할 고려나 가치, 의미조차도 없다고 치부해 버리고 만다. 이것도 일류병의 일종으로서, 유명세는 인간 세상사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인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될 수는 없다. 그는 한마디로 세기의 박식한 사람, a Polymath였다. 그래서 2007년, 네이처지는 인류사에 공헌한 10명 중 1위의 영광을 그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 과학, 해부학, 천문학, 기하학 등의 다방면의 천재로서, 현대의 창의성 교육이 추구하는 융합형 인재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안타깝지만 그처럼 아주 기발한 만능인이 되기가 매우 힘들고 무척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주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일상적인 삶에서 “소소하게라도”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작은 창의성(small creativity)’이다.     최근에 본 아름다운 사진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작은 창의성’과 관련해서 한 세 가지 정도를 여기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진은, 8개 이상의 오렌지색 칫솔을 세로로 긴 오돌토돌한 꽃병에 깔끔하고 정결하게 담아 탁자 위에 놓고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봄의 꽃기운과 함께 기분이 저절로 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둘째는, 실내의 마룻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나서 어린 소나무를 통째로 얹혀 세워 놓고, 정면에서 똑바로 찍은 사진이다. 이는 산뜻한 녹색 나무의 생생한 모습을 그대로 잘 담아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수도꼭지에 미국 100달러 지폐 두 장을 거꾸로 집어넣어 물이 그 위로 흘러내리게 하고 찍은 사진인데, 아주 기묘하면서도 풍요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사진들은 그다지 걸작처럼 보이지는 않았어도 특별한 오라(aura) 내지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내게는 일상 속의 창의성 발휘에 아주 적합한 예들로 보였다. 즉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을 이용해서 아주 재밌고 상큼하게 연출하여 멋진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소소하면서 동시에 훌륭한 작품을 이루어낸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즉 일상 속에서의 작은 창조다!    그리고 창조가 꼭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울 필요는 없다. 기존의 것들을 조금씩 각도를 돌려서 보면 된다. 나는 이것을 야구의 커브볼처럼(curve ball), ‘휜 관점’이라고 명하고 싶다. 이 휜 관점을 영어로 표현하자면, a twisted perspective다. 이는 일상적인 것들을 약간 구부리고 비틀어서 보는 것이다. 이렇게 각도를 약간 휘어서 보면,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의 일상 속에 커브볼과 마찬가지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움과 마치 향신료를 치듯 살짝살짝 조금씩 흥취를 더해주는 것이다. 솔직히 멋진 조각상도 직선과 곡선이 함께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아름다움의 묘미를 갖추는 거 아닌가. 자신의 시각과 관점을 조금 비틀어서 새로이 보면, 여기서 재미와 흥미가 생겨 더욱 더 주변 사물의 특성과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창의적인 사고와 창조성의 크고 작은 선순환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이는 결국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서, 삶의 목적을 찾고,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주고,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의 지평선을 넓혀 나가고, 오직 단 한 번 살다 가는 우리의 소중한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준다. 창의력과 창조력은 같은 대상을 타인과 달리 각도를 휘어서 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다양하게 생각해야 가능해진다. 자고로 재미있는 유머는 기존의 사고를 비틀어 짜야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창의성 관점 창의성 발휘 창의성 교육 위스콘신대 교육학

2024-10-22

[손원임의 마주보기] 아이의 창의성 키우기

창의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제일 먼저 연상되어 떠오르는 형용사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혹은 ‘독창적’이라는 낱말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이나 새로운 발명품을 접하면, 대단하다며 매우 칭송하며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WOW!” “우아!” 하는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내는 문학작품과 행동들은 창의적이며 창조적 사고가 빚어낸 인류의 유산으로서 길이 남는다.       나는 위스콘신 대학교수(University of Wisconsin-Platteville)에서 여러 과목들을 가르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많은 흥미를 갖고 재미있게 가르쳤던 과목이 있었다. ‘어린이의 창의성 개발(Creative Development in Early Childhood)’이라는 교과목이었다. 유아교육에서는 창의성 개발 교육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유치원 교사나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이 과목을 필수로 수강했다. 그래서 나는 내 교수요목(syllabus)에 오리가미(origami)는 물론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의 예술적 양식(artistic styles)의 역사와 사조를 포함시켰다. 물론 창의성에 관련하려 미술뿐만 아니라 지리적 위치, 건축물, 음악, 음식, 의류, 언어, 문학 작품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나는 예술(the arts)은 사람이 사는 모습과 인간의 활동 어디에서나 묻어나고 아주 심오하고 깊게 배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교사가 되기 전에 되도록 많은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의 창의성을 키워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고로 “예술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윤택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타고난 ‘창의적 마인드(creative mind)’를 무시하고 움츠러들게 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발달시키고 북돋워주어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가 말한 것처럼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떻게 예술가로 남아있느냐는 것이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고 장려하는 지름길은 자라면서 매사에 호기심을 잃지 않고 키워갈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 사실상 모든 인류의 역사와 문화 및 과학의 발전과 정립은 크고 작은 호기심과 ‘왜일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어 왔다.     우리 주변에서 어린이들이 얼마나 기발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많고 끊임없이, 끝도 없이 귀찮게 물어보는 지는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다들 이해할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일상생활에 찌들고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자녀의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라면, 더욱 더 교육적으로 자녀와 보내는 질적인 시간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비행기내와 식당과 카페 등 어디를 가더라도 아주 어린아이들조차 아이패드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스크린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넋 놓고 시간을 때우는 모습을 흔하게 보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아기들이 태어난 이후, 2주 된 아이들이 벌써 사람의 얼굴을 장난감보다 좋아한다고 한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사람의 머리 위에 컵을 올린 모양이나 입에 냅킨을 넣은 우스운 모습들을 보는 것보다 사람, 특히 엄마의 얼굴에 가장 높은 반응을 보인다. 또한 4개월에서 12개월 된 아주 어린아이들은 엄마 냄새를 맡으며 사람의 얼굴을 인지하는 능력을 크게 발달시킨다.     결론적으로, 우리 아기들의 타고난 호기심과 창조성이 커가면서도 유지되도록 하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오감을 열어주는 습관을 키워주는 것이 좋다. 집에서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창의성을 키워주는 방법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으뜸은 역시 ‘읽기’에 있다.    아이들과 동화책을 읽을 때, 책 표지를 보고 무슨 내용일지 미리 생각해보게 하거나, 책을 읽고 나서 책의 마무리를 아이들의 상상력에 따라 새롭게, 자유롭게 이야기해보도록 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창의성 창의성 개발 위스콘신대 교육학 어린아이들조차 아이패드

2024-09-03

[손원임의 마주보기] “나는 놀라워!”

영어의 “I am amazing!”, 즉 “나는 놀라워!”라는 말은 좋은 모토로 삼을 만하다. 아침에 침실에서 나오면서 이 한마디만 해도,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우리의 뇌가 참으로 신기하게도 거짓말에 아주 쉽게 넘어간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자신에 대한 이런 긍정적인 암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살면서 때때로 그들을 지탱해 줄 삶의 신조 혹은 ‘모토(motto, 금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빛의 지혜’다.     삶의 모토라 하면, 가정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교훈 즉 가훈을 들 수 있겠다. 이제는 핵가족이나 싱글족이 일반화되면서, 더 이상 가문의 지침, 즉 가훈, 가헌, 가학, 가법이란 말들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경향도 팽배하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엄격하고, 답답한 틀 안에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일부 청소년들은 사회의 유명인사, 스포츠인, 다양한 장르의 연예인이나 가수를 행동과 삶의 모델 대상으로 삼고 따른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논리적으로 정말 말도 안 되는 교리를 충성하고 따르며, 결국 전 재산을 바치고 배우자와 자녀들의 소중한 삶까지 희생시켜버리고 마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정치와 성 정체성, 문화적 성향 등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주장과 신념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 간의 거리가 벌어져 버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철학도, 종교도, 사상도, 교리도, 가훈도, 모토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주장하고 널리 퍼뜨리는, 겉으로 보기에 매우 설득력 있는 ‘흑백논리’ 자체에 더 이상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디에나 ‘회색지대(grey-zone)’가 존재한다.” 즉 우리의 삶을, 인생을 단 한가지의 논리로, 잣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동안 사람들이 충성하고 따르면서 ‘절대적 진리’로 믿었던 많은 것들이 시대적, 사회적 시각의 차이에 불과했다고 밝혀졌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상황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거짓과 오류로 드러나거나, 인류 문화적 관점과 설득력 있는 논변과 추론, 사조나 유행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과장, 축소되어 기술되고 평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행히 우리 인간의 이성적인 인간 뇌는 ‘유용성’도 보인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게 맞고, 또 저 사람 말을 들으면 또 저 사람 말이 맞다. 이를 “너무 귀가 얇다”고 비판할 수도 있으나, 때로는 이렇게 인생의 사안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다소 회의적이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번은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성당 앞을 지나다가, 아주 우연히 한 백인 남자 추기경(cardinal)과 마주쳤었다. 아마도 무슨 커다란 이벤트가 막 끝난 모양이었다. 와우, 너무나 놀랍게도! 나는 그 고귀한 분을 바로 코앞에서 아주 가까이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악수를 청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냥 이내 그 순간을 지나쳐 버렸다. 물론 그때 추기경의 손을 잡고 “신의 축복”을 받을까 말까 몇 초 동안 잠깐 망설였지만, 마침내 그 생각을 접어버렸던 것이다. 바로 조금 떨어져 있던 다른 여성분이 그 기회를 잡아 추기경과 악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거 아는가? 이후 조금 더 길을 걷다 보니, 아주 금방 추기경도, 축복도, 또 그 상황도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안타깝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나도 이제 나이 들고 늙어가는 모양이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 하지 않던가. 이 세상은 참으로 바쁘고 복잡하게 돌아간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논리가, 교리가, 이론이 상존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멍하게 생각을 놓고 남들이 늘어놓는 거짓말에 속으며 살 수만도 없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사회의 흐름을 읽으면서, 자신의 합리적인 모토를 가변적, 유동적으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와닿고,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나도 겸허한 마음으로 희망찬 모토를 한번 정해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니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자.” 왜냐하면 “나는 놀라우니까!”말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위스콘신대 교육학 정신과 마음 유명인사 스포츠인

2024-08-06

[손원임의 마주보기] 행복의 새로운 Q 공식

행복이란 무엇일까? 잠깐 동안 순진한 아기가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나는 행복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처럼 순간순간 짧게 느끼는 아주 깨끗한 감정 상태라고 본다. 조금 더 나아가 극도의 행복감 또는 희열의 감정은 ‘유포리아(euphoria)’ 상태이며, 인간은 때때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쾌락의 절정’을 보다 오랫동안 지연시키고자 과욕(!)을 부리기도 한다. 문제는 행복을 소유할 수 없기에, 삶의 과정 내내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고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창의성을 발휘하여 추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 조사나 인터뷰들에 따르면 (극도의) 행복이란 그다지 대단한 데에 있지 않다. 행복에는 딱히 우열이 없고 물질적 소유가 절대적으로 좌우하지도 않으며, 마법적인 신비스러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인간사에 기분 나쁜 일들과 불행은 다반사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이란, 한마디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침에 단잠을 자고 깨면 기분이 무척 상쾌하다. 점심에 아주 달달한 딸기쉐이크를 한잔 마셨더니 더위가 싹 가셨다. 저녁에 아주 희극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보고 맘껏 웃어 제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사소한 것이며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주위의 사물들과 사건들, 사람들을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자. 우리에게 가깝고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서 크고 작은 유포리아적 순간들을 발견하게 된다. 즉 행복의 비법은 일상생활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지적이며 논리적이다. 그래서 행복을 좀 더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항상 뭔가를 더 요구하고 원한다.     이에 미국의 긍정 심리학의 아버지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이 제시한 행복의 공식이 도움이 된다. 그의 행복 공식은 ‘H=S+C+V’로서, 행복(Happiness)은 선천적 특성(Set range), 후천적 환경(Circumstances of your life), 자율성(Voluntary control)의 총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행복의 변수 중에서 우리 힘으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자율성에 더 큰 무게, 즉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전반적인 삶과 인생 경로에 있어서, “스스로의 규율과 통제” 즉 ‘자율성’이 천차만별의 변화와 혁신적 발달과 발전을 가져오며, 결국 선천적 특성도 후천적 환경도 경우와 상황에 따라 자유의지를 발휘해야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자율성과 용기, 끈기, 배짱은 행복의 종류와 정도에서도 그 차이가 크고 작게 또는 다양하게 가지를 치며 벌어지게 만든다.     더 나아가서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행복의 Q 공식이 있다. 행복은 세 가지 자질(quality)의 합인 것이다. 즉, ‘H=Q1+Q2+Q3’로서, 이때 자질 Q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 충분히 가변수요, 임의적이다! 우울하고 실망스럽고 괴로울 때면, 자기 자신만의 세 가지 자질, 특징을 생각해보거나 노트에 적어보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잘 웃고, 잘 먹고, 매사에 긍정적이야!” 혹은 “나는 라면을 아주 잘 끓이고, 화분을 잘 가꾸며, 친구가 많아!”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이렇게 우리 자신에게 낙관적으로 ‘향기로운 정서’를 끊임없이 불어넣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세상은 때때로 또는 언제라도 험하고 매우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서지 않으면, 아주 쉽게 빨리 절망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유명한 긍정 심리학자인 탈 벤 샤하르(Tal Ben-Shahar)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실의와 낙담을 허락하지 마라. 대신 무엇을 해야 더 기분이 좋아질지 자문해야 한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날 때마다 자신에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되새김질하자. “오늘도 행복하게 신나게 아름답게 멋지게, 그리고 웃으며 살자!”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행복 공식 행복 공식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4-07-09

[손원임의 마주보기] 질문은 딱 세 가지만!

내가 자주 가는 빵가게에는 항상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는 아주 친절한 아가씨가 있다. 그런데 어느 화창한 날 아침, 몇몇의 사람들이 계산대 주변에 모여 서서는, “아이구, 그거 참, 안됐네요!”라고 말하면서 매우 안타까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기다리다 내가 주문할 차례가 되어, 나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의 10살짜리 조카가, 그의 전신을 지독히 고통스럽게 괴롭힌 암으로 간밤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 어린 나이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희귀한 병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저 세상으로 간 것이다.     이처럼 아직도 가혹한 병마와 싸우다가 안타깝게 죽어가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또 과학과 의학, 기술의 혁신적인 발달과 발전으로 수없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기적적으로 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에는 훌륭하고 헌신적인 의사들의 역할 또한 매우 크다.     의사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다. 그는 특히 의사의 역할과 자세, 직업 윤리와 도덕을 다룬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로 유명하다. 이 선서의 요지 중 몇 가지를 들자면, 환자의 건강과 생명 우선, 인류에의 봉사, 양심과 위엄 있는 자세, 인도에 어긋나지 않는 의학적 지식과 기술의 사용이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과 의지가 담겨 있는 선서이며, 아직도 많은 의학협회와 의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고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이 선서는 인간관계의 핵심인 ‘인간 존중 사상’을 담고 있기에,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문과 직종에 다 해당된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학교나 병원, 기업들이 ‘아동중심’, ‘학생중심’, ‘환자중심’, ‘고객중심’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광고와 고객 유치, 유지에 열심히 앞장서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아이중심주의 육아’가 아주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부모에게는 그렇게 곱디고운 자녀의 성장이 매우 자랑스럽고 감격스럽다!     내게도 그날이 왔다. 드디어 내 딸이 2024년 6월 7일 금요일에 의대 레지던트 과정을 졸업하고 이제 9월부터 정신의학자(psychiatrist)로서 뉴욕의 코넬 대학교 병원에서 정신질환자들을 돕게 되었다. 그날 딸의 졸업식 저녁 만찬에서, 내 뱃속으로 난 딸이 다 자라서, 당당히 홀로선 의사로서 졸업 학위 명패를 받는 것을 바라보는 내 가슴이 얼마나 벅찼는지, 그 순간의 심정과 감동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제 딸에게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날 연이어서 여러 상들을 휩쓸어 버린 데서 그치지 말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자신이 부모와 스승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재능을 더욱 더 승화시켜서, 다시 이 사회에 기여하고 많은 환자들을 잘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다!     언젠가 딸이 십대였을 때 감기로 너무 많이 아파서 급히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답답한 마음에 몇 가지 질문들을 적어갔었다. 그런데 의사가 사전에 내 질문 목록을 보았는지, 내게 다짜고짜 선 자세로 냉담하게 이렇게 말했었다. “딱 세 가지 질문만 하세요!” 그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잠깐 동안 할 말을 잊었었다. 이후 딸의 진료가 끝나고 나서, 의사에 대한 상당히 “실망스러운” 감정을 안고 병원을 나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텔레비전을 포함한 여러 대중매체들은 환자에게 무엇이든지 궁금하면, 의사에게 충분히 질문하고 상담하고 나서 약 복용, 수술 등에 대해서 결정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막상 병원에 가면, 전문가인 의사의 눈치를 보기에 바쁘고, 질문도 제대로 못하기 일쑤이다. 나는 십분 이해한다. 많은 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의사들이 시간에 쫓기며 무척 바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더 많이 교육받고, 알고, 재능을 부여 받은 자가 조금 더 친절한 자세로 ‘경청’하고 ‘관용’을 베풀고자 노력한다면, 이 사회와 세상은 분명히 더 아름답게, 화창하게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히포크라테스 선서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4-06-25

[손원임의 마주보기] 행복한 하루의 의미와 요건

행복한 하루의 의미와 요건   우리가 매일매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듣고 또 주로 하는 인사말 중에는 “건강하세요!” 혹은 “행복하세요!”가 당연히 으뜸을 차지한다. 이는 누구나가 건강하고 싶고 또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인간 모두의 아주 자연스럽고도 처절한 바람과 마음, 그런 생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일상 속에서 느끼고 경험하는 행복의 요건들로 과연 무엇들을 우선 꼽을 수 있을까?   언젠가 차 안에서 무심코 듣게 되었던 라디오 방송 내용을 소개하자면, 그것은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순위’에 관한 설문조사 내용이었다. 이제는 뭘 들어도 돌아보면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는데도, 이 행복 순위 목록만큼은 아직까지도 이상하리만큼 기억이 잘 난다! 아마도 이 주제가 매우 흥미롭기도 한데다 나 또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심정에서 일 거다.     미국 사람들에게 설문조사 한 결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10가지 요인 중 첫째는 바로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양질의 포근한 수면이었다. 둘째는 당연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였다. 그리고 셋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였다. 이어서 넷째는 속이 아플 정도로 혹은 오줌을 찔끔 쌀 정도로 아주 대차게 너무나 크게 웃어 젖히는 경우라고 한다. 때론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저 얼빠진 바보처럼 흔쾌히 웃고 나면, 우울함이 줄어들고 기분까지도 왠지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다섯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 사이에 낀 팝콘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나서 느끼는 개운함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 10위 안에는 낯선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을 때도 들어 있었다. 나 역시 이 목록에 100% 동의한다.     이 목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간이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참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요인들이 얼마나 사소하면서도, 기본적인 생리와 본인 스스로의 감정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지가 매우 돋보인다. 또한 칭찬의 중요성이다. 빈말이라도 좋은 말, 즉 ‘칭찬’은 해서도, 들어서도 좋은 것이다. 나도 며칠 전에 어떤 아가씨의 손톱(예술)이 너무 예뻐서 칭찬해주었다. 그 아가씨는 ‘싱글벙글’ 너무 좋아했고 나에게 샘플도 듬뿍(!) 챙겨 주었다. 나도 역시 칭찬을 낯선 사람들에게 들어서 기분이 좋을 때가 참 많다. 얼마 전에는 한 신사분이 내 글씨체가 “너무 아름답다!”고 말해주어서 온종일 무척 유쾌했고, 또 한 카페에서는 한 여성분이 내 운동화가 “너무 예쁘다!”며 “어디에서 샀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런 칭찬과 뜻밖의 관심들은 항상 나를 매우 ‘흐뭇하게’ 해준다. 이제는 유튜브 상에서 주로 짧은 요약본 위주로 영화를 접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오래간만에 아주 감동적이면서 뇌리에 깊게 남는 영화인, 2023년 작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Society of the Snow)을 시청했다. 이 영화는 우루과이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재난 이후, 인간의 처절한 생존의 모습을 2시간 24분 동안 아주 감명 깊게 잘 묘사하고 전달한다. 또한 인간 생존에 대한 ‘3개의 룰(rule)’에 관한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물론 환경과 개인차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인간은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는 3일, 그리고 음식 없이는 3주” 정도를 견딜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리에게 매일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달콤하고 맛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게 감사한 일인지를 또다시 ‘생생하게’ 깨닫게 해준다.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나서 맛있게 먹고 입을 벌려 깨끗한 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밝고 크게 ‘한 번 두 번’ 웃어보고 또 그날 그날 자신의 기분에 맞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타인에게 아무리 ‘빈 칭찬’이라도 해주도록 노력하자. 약간의 거짓이면 어떤가? 서로서로 상대방의 얼굴에 “웃음 진 미소”를 띄워보자. 우리 뇌는 너무나 다행히도 아주 잘 속는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쓰면 매우 쉽게 실천할 수 있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행복 의미 행복 순위 위스콘신대 교육학 교수 교육학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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